본문 바로가기

언론 소개

[한겨레] 세벽세시 책읽기 - 지도 끝의 모험

[한겨레신문] 정혜윤의 새벽세시 책읽기
지도 끝의 모험 - 릭 리지웨이 지음, 이영래 옮김 l 라이팅하우스(2023)
우리에게는 자신이 어떻게 해서 바로 이 모습으로 살게 되었는지를 말할 때 반복적으로 하는 이야기가 있기 마련이다. 파타고니아의 지속가능경영 부사장, ‘지도 끝의 모험’의 저자 릭 리지웨이에게도 그런 것이 몇 가지가 있다. 릭의 어머니는 그의 25살 생일날 ‘오듀본 조류도감’을 선물로 사주셨다. 하루는 그가 책상에 앉아 있는데 창밖에 벌새가 보였다. 그는 얼른 조류도감에서 그 새를 찾아봤고 안나 벌새라는 것을 확인했다. “조류도감에는 교미기가 오면 수컷 안나 벌새가 똑바로 날아올랐다가 방향을 틀고 급강하를 한 뒤 꼬리 깃털을 펼치면서 펑 하는 소리를 낸다고 적혀 있었다.” 그 소리가 벌새의 짝짓기 신호라는 것이다.
“며칠 후 자동차를 만지고 있는데 벌새가 직선으로 날아올랐다가 똑바로 곤두박질치는 장면이 눈에 들어왔어. 그리고 펑 하는 소리가 들렸지. 조류도감에 있는 이야기와 똑같았어. 1분 후에는 또 다른 펑 하는 소리가 들려왔어. 나는 선 채로 눈을 감고 귀를 기울였어. 1분마다 동네와 언덕 주변에서 펑 하는 소리가 계속 들렸지. 진짜 1분마다 펑 하는 소리가 났어. 그동안은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소리였지.” (벌새의 ‘펑 하다', 진짜 신기하고 이쁜 동사 같다.)
그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사용한다. “안나 벌새의 펑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법을 배운 것이 관심을 기울이는 법을 배우려는 평생의 노력이 시작된 때였어.”

그의 인생에 안나 벌새만큼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것은 그에게 멘토가 된 ‘모험의 신’인 두 친구, 이본 쉬나드와 더그 톰킨스다. 등반을 즐기던 이 모험의 신들은 둘 다 아웃도어 회사를 차렸다. 이본은 파타고니아를, 더그는 노스페이스를. 그러나 둘에게 사업은 수단이고 목표는 야생이었다. 이본은 회사의 사정이 좋으나 나쁘나 자신이 ‘지구세’라고 부르는 것을 내놓았다. 더그는 노스페이스를 매각한 돈을 들고 칠레의 5성급 땅(그가 최고로 아름다운 땅을 가리킬 때 하는 말)들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더 많은 보호구역을 만들어서 칠레와 아르헨티나 두 나라에 기증하는 것이 더그의 인생 목표였다. 더그는 릭에게 이렇게 말했다. “국립공원은 기준 중의 기준이야. 언젠가는 이 나무, 이 숲, 이 모든 트레일, 야영장을 칠레에 돌려줄 생각이야. 그렇게 되면 이 나라의 국립공원 시스템이 커지겠지.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렇게 해서 공원에 대한 기준이 더 높아지고 사람들이 공원에 대해 가지는 자부심이 강해지는 거야.”
이 문장을 읽을 때 자부심이라는 단어가 내 마음속에서 ‘펑’ 확장되었다. 더그는 자부심을 가지고 삶을 선택했고 선택한 일에 어마어마한 에너지를 쏟아부었다. 더그 덕분에 나는 광활한 칠레의 국립공원들을 상상하고 그런 거대한 보호구역이 있는 미래를 더 열렬히 원하게 되었다. 이 두 사람의 삶은 릭에게 녹아들었다. 릭 또한 자연을 지키는 일에 힘을 보태는 것을 평생 해야 할 일로 생각하게 되었다. 진짜배기 우정이다.
‘지도 끝의 모험’은 야생을 모험한 이야기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다. 친구와 사랑을 찾고 인생을 바쳐 해야 할 일을 찾고 자신의 삶을 만들고 아직 우리가 가보지 못한 길을 만들면서 살아간다는 고난이도의 인생 모험 이야기이기도 하다. 그들의 희망과 열정은 이 불타는 지구에서 지금 가장 필요한 희망과 열정이다. 나는 희망과 열정을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고독과 무의미를 거부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고 삶 속에 해답이 있다는 말이 의미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혜윤 CBS(시비에스) 피디

도서 소개 보기 : https://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030760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