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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독서

'재벌집 막내아들'과 ESG 경영이 무슨 상관인가요?

 

JTBC <재벌집 막내아들> 포스터_ JTBC홈페이지 제공

 

 

*주의 : 스포 있음!

JTBC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종영되었지만 그 열기는 여전히 식지 않고 다른 콘텐츠로 옮겨 붙고 있습니다.

원작과 완전히 달라진 마지막회가 안겨준 충격(순양그룹을 사기 위한 분투의 17년이 꿈이었다니!) 때문에,

시청자들이 원작 웹툰의 마지막회만 찾아가서 읽는 기현상도 벌어졌습니다.

또 드라마 속 '진양철 회장(이성민 분)'이 창업한 순양그룹의 스토리가 삼성가와 현대가를 참고해서 만들었음은 누구나 알 수 있었기 때문에, 그 나비효과로 삼성그룹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자서전 '호암자전'과 현대그룹 창업주 고(故) 정주영 회장의 자서전 '이 땅에 태어나서' 등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 순위에 반짝 오르기도 했습니다.

호암자전저자이병철출판나남발매2014.04.23.
이 땅에 태어나서저자정주영출판솔발매2015.04.15.

 

환생/회귀물이라는 장르의 규칙을 저버린(혹은 의도적으로 무너뜨린) 드라마의 마지막회는 '파리의 연인 이후 최악의 엔딩'이라는 욕을 얻어먹기도 했지만, 진도준으로 환생했던 주인공이 현실의 윤현우(송중기 분)로 돌아와 참회한다는 마지막을 선택한 제작진의 고뇌도 충분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드라마 속에서 그려진 재벌의 모습은 그룹 경영권을 놓고 형제들끼리 싸우고, 그 과정에서 온갖 불법과 편법을 자행하는 어두운 모습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주인공이 그룹의 최대주주가 되어 경영권을 뺏는다는 해피엔딩만으로 끝맺기에는 뭔가 찜찜하고 석연치 않았을 수도 있었겠죠.

그 선택의 배경에는 오늘날 유행처럼 회자되는 'ESG 경영'이 있다고 짐작됩니다. 지금은 '환경(E)'과 '사회(S)'를 생각하지 않는 기업은 더이상 공존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 두 가지를 달성하는 데는 '지배구조(G)'의 근본적인 변혁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ESG'는 언제나 함께 같이 갈 수밖에 없죠. 그 점에서 드라마 제작진은 경영권 상속을 위해 복잡하고 어지러운 지배구조를 짜고, 주식시장의 왜곡을 조장하는, 우리나라에만 존재하는 기형적인 '재벌' 방식의 지배구조(G)를 건드리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진도준이 마침내 재벌가의 총수가 되어 윤현우의 묘에 소주를 부으면서 끝나는 원작과 달리, 현실의 힘없는 윤현우로 돌아와(여기서 시청자들의 분노 폭발!) 순양그룹의 범죄를 자백해서, 순양일가 전원이 경영권을 내놓게 만드는 엔딩을 선택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겠죠(반박시 당신이 옳습니다). 이렇게 순양그룹은 경영과 소유가 분리된 전문 경영인 체제로 '지배구조(G)'를 개선하게 됩니다.

* * *

 

동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완전히 다른 모델이 있습니다. 파타고니아의 창업주 이본 쉬나드는 기업이 이익 추구를 최우선으로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파타고니아를 주식시장에 끝까지 공개하지 않았고,지난해(2022년)에는 회사 지분 전체를 자식들이 아닌 재단과 비영리단체에 양도했습니다. "지구가 목적이고 사업은 수단"이라는 자신의 경영 철학을 완벽하게 실천한 것입니다. ​

파타고니아, 파도가 칠 때는 서핑을저자이본 쉬나드출판라이팅하우스발매2020.04.30.

 

좀더 단순하고 정직한 방법으로 경영권 승계를 마친 또다른 사례도 있습니다. 바로 세계 최고의 부자 가문, 바로 월턴가입니다. 월마트의 창업자 샘 월턴은 초창기부터 직원들이 회사의 주식을 취득할 것을 장려했고 아주 많은 직원들을 엄청난 부자로 만든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 직원들에는 그의 자식들도 포함됩니다. 샘 월턴은 사업 초창기부터 자식들에게 일을 시켰고, 월급과 보너스로 틈틈이 주식을 사 모으도록 권했기 때문에 샘 월턴이 죽고 나서 월마트에는 상속 문제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

월마트, 두려움 없는 도전저자샘 월튼,존 휴이출판라이팅하우스발매2022.10.15.

 

'재벌집 막내아들' 때문에 독자들은 우리나라의 고도 압축 성장 스토리를 주인공과 함께 다시 한번 경험하는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진양철이라는 열정적인 창업가의 매력적인 모습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위대한 유산을 남긴 창업가들의 공통점은 그들이 인생의 단 한순간도 허투루 살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드라마의 주인공처럼 두 번째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에 지금 이 순간의 삶이 소중하고 아름다운 것이겠죠?

 

2023년 설날 연휴에는 후회없는 삶을 살다간 창업가들의 자서전과 함께 선물처럼 주어진 우리 인생에서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지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