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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소개

[중앙일보] 웃을까, 울까? 치매 어머니와 대머리 아들 _ 김효은 기자

중앙일보 2013.11.30일자 

기사 전문 : http://joongang.joins.com/article/aid/2013/11/30/12864953.html?cloc=olink|article|default 


치매에 걸린 어머니가 기억하는 단 하나. 바로 아들의 반들반들한 대머리다. 머리를 쓰다듬는 따스한 손길 속에 어미의 사랑이 있다. [그림 라이팅하우스]


저자 유이치(63)씨의 고등학교 시절로 잠시 돌아가보자. 혈기 왕성했던 소년은 자위를 끝내고 그대로 잠들었다가 어머니에게 들킨다. “아이코 유이치, 이게 무슨 꼴이래!” 수치심으로 절망에 빠진 그는 ‘하느님! 부디 어머니가 얼른 나이 먹어 치매가 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한다.


 기도 때문인지, 나이 때문인지 구순을 바라보는 노모는 정말 치매에 걸린다. 점점 가족의 얼굴까지 잊어가는 어머니, 어느 날 대머리가 된 아들을 보고 이렇게 말한다. “너도 폭삭 늙어버렸구나. 어릴 때 너무 고추를 조몰락거려서 그래.” “크헉!!!”


 한참 이 책을 부여잡고 낄낄거리다 주변의 눈총을 맞았다. 환갑이 넘은 대머리 아들이 치매에 걸린 노모를 모시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만화로 그린 것인데 그 웃음과 감동의 강도가 만만치 않다. 일단 출간 과정부터 드라마틱하다. 출판사 편집 일을 하던 저자가 지역 정보지에 4컷 만화를 연재하던 것을 자비로 출판했는데 독자 입소문을 타고 일본 서점 종합 베스트셀러가 됐다. 그 반향이 대단했던지 최근엔 영화로 만들어졌다.


 일본 열도를 움직인 힘은 분명 쓰다듬어주고 싶을 정도로 사랑스러운 캐릭터에서 나왔을 것이다. 동글동글 흰머리 이등신 ‘엄니’와 반짝반짝 빛나는 대머리 아들의 조합은 그저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의 온도를 높인다.


엄니의 유일한 운동은 ‘페코로스(작은 양파)’ 같은 아들의 머리를 만지는 것이다. 머리가 빠지는 것도 서러울 텐데 아들은 “내가 대머리여서 다행”이라며 그저 웃는다. 자신의 민머리만이 엄니가 현재와 소통하는 유일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손과 머리로 연결되는 모자의 먹먹한 교신을 보면서 각자의 어머니를 떠올리지 않을 재간이 없다.


 무엇보다도 일본의 오늘이 고스란히 반영된 저자의 가족사가 무게감을 더한다. 전쟁과 원폭 피해를 경험한 부모 세대, 노인이 노인을 돌봐야 하는 노노개호(老老介護) 세대, 취업 난민으로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는 청년 세대까지 저자의 이야기는 일본 사회의 자화상이자 나아가선 우리의 얼굴이다.


 단숨에 책장을 넘기다가 마지막 페이지에서 오래 머물렀다. “잊어버리는 것은 나쁜 일만은 아닙니다. 어머니를 보면서 그렇게 생각합니다.”(209쪽)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어머니의 세계는 죽었던 남편과 딸이 살아오는 환상의 공간이다. 그러니 이렇게 늙는 것도 나쁘지 않다. 게다가 언제든 머리를 내어주는 아들이 있으니, 그 늙어감은 무척이나 존엄하고 인간답다.


김효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