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교동 일기
기획, 그 무수한 어긋남의 반복에 대하여
writinghouse
2012. 6. 16. 02:17
오늘 필자에게 보내는 제안서를 쓰면서, 기획이란 무수한 어긋남의 반복으로부터 탄생하는 작은 기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만들고 싶은 책에 대한 상(像)이 있으면 그걸 실현시켜줄 저자가 없고, 반대로 용기와 의욕은 샘솟는데 정작 뭘 해야 할지 구체적인 상이 없는 상황이 요즘 들어 번갈아 반복되다 보니, 서로 그리워하면서도 끊임없이 엇갈리기만 하는 남여 주인공들을 보듯 쓸쓸한 기분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열렬한 구애에도 답장 없는 메일함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누구라도 절로 그런 기분이 들 것이다.
하지만 <첨밀밀>에서 장만옥과 여명이 등려군의 노래에 이끌려 기적적으로 만났듯, 무언가를 조건 없이 좋아하고 몰입하는 능력을 잃지 않는 한, 결국 만나야 할 사람들은 만나고 만들어져야 할 책은 만들어질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니까 '장만옥과 여명을 만나게 해주자'가 기획의 아이디어라면, '등려군의 노래'처럼 그 두 사람을 이어줄 공통분모를 찾아 내는 것. 그것이야말로 기획을 실현시킬 핵심 콘셉트일지 모르겠다. 결국 아이디어 이전에 무언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는 능력. 그리고 그 타오른 불씨를 꺼뜨리지 않고 소중히 키워가는 능력. 그것이 전부가 아닐까?
좋아하는 걸 눈치보지 않고 좋아하는 것. 살면서 받은 무수한 상처들로 경질화된 껍질 아래 잠들어 있던 그 말랑말랑한 감각이 서서히 돌아오고 있음을 느낀다. 그러니 기쁜 마음으로 더 많은 어긋남을 만들어 보자. 결국 하나의 노랫소리에 이끌리는 작은 기적을 만나게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