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언론 소개

[조선일보] 노년의 아픔, 온기 가득한 위로가 되다

조선일보 2016.12.22일자 정상혁 기자


노년의 아픔, 온기 가득한 위로가 되다


입력 : 2016.12.22 03:04 

[치매 다룬 만화… 韓·日 양국서 나란히 출간] 


韓 '아스라이' 日 '페코로스' 작가 경험 바탕한 두 작품

"치매의 희비극적 순간 포착… 삶을 포용하는 모습 그려내"


치매. 침애(鍼艾·침과 뜸)로도 고칠 수 없으며, 온전한 삶을 침해한다. "치매 환자 중에 해가 지면 갑자기 난폭해지는 경우가 있어요. '일몰증후군'이라고 한대요. 요양원 직원이 저희 할아버지를 침대에 묶어놓은 걸 본 적도 있어요. 누구나 앓을 수 있는데 아는 건 별로 없었죠." 그 캄캄함을 위해 만화가 나섰다. 한국과 일본 두 만화가의 치매 만화 '아스라이―나를 잊지 말아요'와 '페코로스, 어머니가 주신 선물'이 나란히 출간된 것이다.


두 만화 모두 작가의 경험에서 비롯했다. '아스라이'를 그린 만화가 예환(28)은 "할아버지가 멍한 눈빛으로 냉동 돈가스를 과자처럼 씹어먹고 계신 걸 보고 놀랐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2009년이었다. "치매 판정 후 달라진 할아버지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막막했죠. 제가 겪어야 했던 서투름을 통해 치매를 제대로 알리고 싶었습니다." 초보 사회복지사의 좌충우돌을 그린 '아스라이'는 지난해 인터넷 사이트 피키캐스트 연재 후 완결됐지만 인기 덕에 최근 단행본이 출간됐고, 카카오페이지에 유료로 재연재되고 있다.



치매에 걸린 할머니가 손자를 달래려 사탕을 건넨다. 옛 기억이 떠오른 것이다(사진 왼쪽·'아스라이―나를 잊지 말아요'). 아들의 벗겨진 머리를 치면서 좋아하는 치매 노모. 아들은 노모의 이 건강 운동을 위해 기꺼이 머리를 내어준다(사진 오른쪽·페코로스, 어머니가 주신 선물). /쉼·라이팅하우스 

 

'페코로스'의 만화가 오카노 유이치(66)는 2000년 치매에 걸린 노모의 간병기를 그렸다. '작은 양파'를 뜻하는 '페코로스'는 거의 다 벗겨진 작가의 머리를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치며 좋아했던 어머니의 순진무구함을 떠올리게 하는 필명이다. 이번 작품은 3부작인 '페코로스' 시리즈의 마지막 편. 시리즈는 드라마와 영화로도 제작되는 등 인기를 누렸다.



한·일 양국 모두 고령화와 치매 인구 증가를 경험하고 있다 보니 만화는 지극히 현실적이다. 예환은 "인터넷 카페 '치매 노인을 사랑하는 모임'에도 가입하고 치매 관련 서적을 뒤져가며 자료를 찾았다"면서 "정확한 내용 전달을 위해 한국치매협회 감수까지 받았다"고 했다. 가족의 조언도 도움이 됐다. "할머니가 난동을 부리면서 하도 때리니까 주인공이 머리에 바가지를 뒤집어쓰고 달래는 장면은 큰이모의 실화예요." 실생활을 묘사하다 보니 환자가 오물이 묻은 옷을 옷장에 쑤셔 넣는다거나 벽에 똥칠하는 배변 에피소드도 자주 등장한다. 유이치의 노모 역시 아들에게 들키기 싫어 똥 묻은 속옷을 여기저기 감춰두는 일이 잦았다. 유이치는 "그 시절 어머니의 자그마한 뒷모습이 말할 수 없이 쓸쓸했던 게 생각난다"고 만화에 털어놨다.


"차라리 암이었으면 좋았을 텐데…." 치매 걸린 엄마가 말하자, 딸이 운다. 두 만화의 특징은 치매 환자의 증상뿐 아니라 내면을 담았다는 점. 예환은 "오줌 지린 할아버지의 바지를 억지로 벗길 때 그 할아버지의 심정 같은 것을 드러내려 했다"고 말했다. 기억은 잃어도 감정은 살아 있다. 누군가 강제로 몸에 손을 대는 순간, 수치심과 극도의 공포에 직면한 치매 환자는 물건 등을 집어 던지는 식으로 격렬히 저항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만화가 어둡지 않은 건 동글동글한 그림체와 함께 온기를 부여하는 유머 덕이다. 유이치는 15년간 성인 만화 편집자로 일했던 경험을 살려 성적 코드가 가미된 실화를 넣어가며 울먹울먹하던 독자를 이완시킨다. 김낙호 만화연구가는 "치매의 어설픈 희화화가 아닌 희비극적 순간을 포착해 삶을 껴안는 모습을 통해 선량한 웃음을 빚어낸다"고 평했다.


2014년 여름, 유이치의 91세 노모는 떠났다. 유이치는 "휠체어에서 자유로워진 어머니가 어디로 가셨는가 하면, 내 안에 있다"고 만화에 썼다. "어머니와 함께 한 시간, 요양원에 드나들던 시간이 모두… 내가 재활하는 시간이었던 것입니다." 예환의 할아버지도 2012년 겨울, 숨을 거뒀다. "독자 댓글 중에 '오늘 부모님께 안부 전화 드려야겠다' 같은 내용이 많아요. 그런 마음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6/12/22/2016122200122.html

Copyright ⓒ 조선일보 & 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