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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교동 일기

송인서적 부도에 대처하며...

2017년 1월 2일 새해 벽두. 송인서적이 부도가 났습니다. 1월 9일 송인서적 출판사 채권단회의가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 모인 분들은(저를 포함해서) 송인서적에서 결재받은 어음을 부도 맞거나 납품 도서의 미지급 잔고를 갖고 있는 출판사 분들입니다. 말하자면 빚쟁이들이죠. 위탁거래 방식과 어음결재 관행 때문에 출판사의 피해는 커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부도 시점으로부터 4개월 전부터 받은 모든 어음이 휴지조각이 되고 말았으니까요. 아이쿠! 골치아픈 이야기는 이쯤해두겠습니다.


불과 며칠 전 희망찬 새해 인사를 올렸건만, 사실 연초부터 이리저리 쫓아다니느라 일에 집중할 수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이렇게 많은 출판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나니 어떤 경이로움이 느껴졌습니다. 아울러 서점 매대에서 만나는 수많은 책들 뒤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있었구나라는 실감, 도매상 하나의 운명에 2000개 출판사의 생사가 한데 묶여 있었구나, 출판업 종사자 특유의 숨길 수 없는 기풍이 존재하는구나, 마지막으로, 슬프지만 출판의 미래는 이곳에는 없겠구나 하는 뼈아픈 자각이 들었습니다. 


독자와의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은 1도 없이 중간 유통 마진만 먹는 도매상이라면(모두가 그럴리는 없겠지요), OtoO 비즈니스의 시대에 과연 생존할 수 있을까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질문은 그대로 출판사를 운영하는 제게 고스란히 되돌아왔습니다. 유통사에 의존하고, 지금처럼 독자와 직접 만나려는 노력과 수고를 게을리한다면 얼마 지나지 않아 또다른 채권단회의에 참석할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그 덕분에 앞으로 유통을 어떻게 가져갈지도 분명해졌습니다. 유통을 최대한 단순하고 선명하게 정리할 생각입니다. 독자 여러분과도 유익한 콘텐츠로 더 많이 소통하겠습니다. 아이쿠! 무슨 공약 발표도 아니고, 이쯤 해두겠습니다.


가뜩이나 심란한데 어지러운 생각을 더하기 꺼려졌지만, 어떻게든 마디를 만들어야겠기에 이렇게 몇 자를 적어 기록으로 남기고 2017년의 일을 새롭게 시작하려 합니다. 좋은 책과 콘텐츠로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2017.01.10



* 10개월 후의 경과 


송인서적 회생 계획안이 인가되었다고 합니다. 아무런 반성 없이 회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교훈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청산시켜야 한다고 생각해서 동의서를 써주지 않고 버티다가, 막판에 마음이 바뀌어 동의서를 보냈습니다.


마치 남한산성에 갇힌 무능하고 용렬한 인조처럼, 마음은 김상헌에게 가 있으나 머리로는 최명길의 이성적인 목소리를 끝내 외면하지 못했습니다. 홧김비용으로 감내하기에는 송인 파산의 손실과 후폭풍이 불보듯 뻔하고 너무 크네요. 많은 출판사가 동의서를 보내고, 인터파크로 인수되기까지의 전 과정에서 출판인회의 집행부 분들이 노력하신 것도 그런 현실적 이유 때문이겠죠.


송인 부도 이후 회사 유통을 바꾸기 위해 이리저리 자문을 구하기도 하며 뛰어다니며 든 생각은 결국 모든 결정도 책임도 내가 지는 것이라는 것. 5년 동안이나 불평등한 조건으로 거래했음을 알고도 협상력을 키우지 못하고 협상 테이블에조차 앉지 못하도록 상황을 방치한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사장인 내 탓이라는 것. 정말 뼈저리게 깨달았습니다. 


앞으로 닥쳐올지 모르는 재란에 또다시 탄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문약을 버리고 전쟁을 대비하고자 합니다. 유통 개선을 위한 협상은 계속 진행중입니다. 그러나 독자 여러분들께 좋은 책을 계속해서 선보이기 위해서라도 적당히 타협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좋은 책과 콘텐츠로 꾸준히 찾아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_2017.10.28